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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을 못해서 계속 못올리고 있네..


잡담만 계속 쌓여가는듯. 그래도.. 


계속 노력하다보면-_-;; 한장쯤은 제대로 보정이 되지 않을까?


우선 보정할 수 있는 능력이 될때까지는 내 이야기만 풀어놔야지..


월요일 오늘도 힘내자 아자아자!!!!

Posted by 만들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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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항상 웃을수는 없는 것 같다.

 

기분이 상할때도 있고

 

이유없이 짜증이 나는날도 있을수 있고

 

항상 웃으라는 책들을 볼때면..

 

사람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아야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Posted by 만들고보자
|

2009년 12월 15일 시작하기로한 블로그. 그후에 몇몇개의 글을 남겼지만.

 

어느순간 아무것도 하지않은.. 버려진 블로그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초대장을 준 사람에게 미안한 것도 있고,

 

시간이 남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짝 미칠 것 같아 이제 다시한번 시작하려 해본다.

 

카메라도 있고, 시간도 있고, 귀찮음만 덜어낸다면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개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처음 목표는 개발에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하자 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목표를 주제로 두지 않겠다.

 

오히려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은 자제하고, 다른것들을 해보려한다.

 

책 후기나 여행? 등산. 그냥 내가 보고 느낀점을 이야기하는 편한 블로그가 되었으면 한다.

 

꾸미거나 이런걸 잘 하진 못하지만.. 어짜피 남는게 시간 아니겠는가? 젊었을 때 이런것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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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들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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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게임을 본 후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하다 2004년도에 쓴 글을 어느분이 포스팅한 것을 찾았다.
물론 원문링크가 있어 가봤더니 이미 짤려있는 상태.

박만수라는 인물도 궁금했고, 실내 내용이 궁금했다. 영화라는 극중 재미를 위해 얼마나 많은것이 바뀌었는지도 궁금했고, 확인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분들이 많을것으로 예상되어 영화 내용에 대한 내용은 상해히 언급하지 않겠다.

사실 영화를 보기전에 아래에 있는 사실을 알고 봤으면 좀더 좋았을것을.. 이라는 생각.
다른분들이 좀더 알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적어 옮긴다.


제목 : 최동원과 선동열…그들이 있어 행복했다

한국 야구사의 전설적인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 과연 누가 더 좋은 투수였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난 롯데팬이고 최동원의 팬이다. 그것도 보통 팬이 아닌 아주 열성적인 팬..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고 게다가 롯데만을 응원했었다. 두투수는은퇴한지 오래건만 아직까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두 투수의 우열비교.. 솔직히 최동원의 팬이긴 하지만 나로서도 누가 낫다고 단언을 내리긴 어렵다.두 투수의 소속된팀의 타력이나 나머지 투수들의 기량이 달랐고, 두투수의 나이또한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과거 80년대 중반 프로야구에서의 두 투수의 맞대결을 되새겨 보면서 옛 추억을 더듬어보고자 할 뿐이다.

▲ 서 론

두 투수의 맞대결을 얘기하기 전에 누구나 기억하는 82년 세계야구선수권 때부터를 돌아보기로 하자. 당시 서울에서 열렸던 대회는 이념상의 문제로 쿠바가 불참하면서 한국으로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기회였다. 거기다 전해부터 시작된 프로야구의 열기와 새로 지어진 잠실야구장의 시설이 맞물려 야구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때였다. 풀리그로 치러진 이 대회에 나온 한국 선수단의 면면은 화려했다. 예정대로라면 그 해 프로에 데뷰했어야 할 선수들도 이 대회를 위해 1년간 프로 진출을 유보시키고 만든 당시로서는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투수진만 해도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등에다 타자로는 이해창, 김재박, 유두열 등 최강의 멤버가 망라되어 있었고 그 중에 당시 고려대 2년생이던 선동열도 끼어 있었다.

1차전의 한국의 상대는 약체 이탈리아...한국의 선발투수는 김시진..그런데 의외로 이탈리아를 얕봐서인지 상대투수의 기교에 말리면서 어이없이 1-2 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단 2승을 거뒀는데 1승은 한국, 나머지 1승은 일본을 상대로 거두고 나머지는 몽땅 다 졌다....아이러니칼하게도 우승, 준우승국은 잡고 나머지한테는 다 물린 것이다. 여하튼 이때부터 생긴 한국의 이탈리아 징크스는 국제대회에서 자주 튀어나와 대표팀을 애먹이게 된다..) 졸지에 초상집 분위기가 된 대표팀은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비록 이기긴 했으나 전체적인 투수진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면서 어려운 경기를 계속 치러야 했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 선동열....

그는 강적 미국과의 경기에서 2-1 완투승(15탈삼진, 6피안타 1실점), 대만과의 경기에서 6-0 완봉승(8탈삼진, 5피안타 무실점)으로 최동원의 부상, 김시진, 임호균 등의 난조로 인한 투수진의 숨통을 터주며 일약 대표팀의 에이스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7승 1패의 동률에서 맞이한 일본과의 우승결정전에 선발로 나서서 2실점(비자책) 완투승을 따내고 방어율 0.33에 154km의 강속구를 선보여 한대화를 제치고 MVP로 선발되게 된다. 자...그 이후 선동열의 이름값은 하늘을 찌르게 되고 최동원과 더불어 두 투수 모두 메이저리그의 눈총을 받는 세계적인 선수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두 선수 다 빅리그로는 가지 못했지만 최동원은 토론토와 60만 불에 가계약까지 맺었었고 선동열 또한 LA로부터 90만 불에 입단제의를 받는 등 주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이런 두 투수의 화려했던 아마 시절...그러나 그건 두 투수가 프로에서 벌였던 대결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투수전의 백미로 꼽히는 두 투수의 대결을 보기에 앞서서 잠시 맛본 에피타이저 정도랄까?.....이제 본격적으로 두 투수의 프로에서의 대결과 그 자취를 더듬어 보자.

▲ 본 론 (프로에서의 정면 맞대결)

최동원은 이미 83년에 프로로 진출하여 선동열이 해태에 입단하던 85년엔 이미 국내 최정상의 투수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특히 전해인 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2완투승,1완봉승, 거기다 더 놀라운 건 1패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도대체 몇 경기를 나온 건지...)을 거두고 페넌트레이스 27승에 MVP에 덧붙여 우승을 이끌어내며 누구도 최동원이 당시 국내 최고투수란 점에 이의를 달지 않던 시절이었다.

반면 선동열은 한국화장품과의 스카웃 분쟁에 휘말려 85년 후반기에야 비로소 정식 데뷰를 했지만 후기리그만을 뛰고도 7승 4패에 방어율 1.80으로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하며 범상치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최동원 또한 85년 20승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20승 투수 반열에 올라 프로 최고의 투수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에 그 당시부터 야구계 일각에서는 두 투수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논쟁이 조금씩 흘러나왔고 그 결과는 결국 86, 87 양해에 걸쳐 누구도 탄복할 수밖에 없는 명승부로 이어지게 된다.

(1) 86년 4월 19일....후배의 첫승!!

드디어 운명의 그날!! 두 투수의 첫 맞대결이 성사된 날이었다. 86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전해 프로 적응을 끝낸 선동열은 무서운 기세로 승수쌓기에 나서고 이에 질세라 최동원 또한 호투를 거듭하며 개막 이주도 지나지 않아 두 투수는 벌써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두 투수의 맞대결이라니....이날 부산 사직구장은 토요일 오후에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모두의 관심 속에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로에서 관록까지 쌓은 최동원에 비하면 선동열이 아직은 반수 정도는 아래일 것이라는 예상이 은연중에 나돌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최동원은 당시 국내 최고투수였고 선동열은 전해 프로에 뛰어든 대형 신인일 뿐이란 생각이 대다수이던 예상.....

그런 기대 속에 오후 4시..경기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첫 1, 2회는 두 투수의 팽팽한 투수전 속에 득점없이 끝났다. 숨막히는 긴장이 흐르던 오후 4시 51분...3회초 해태 공격 1사 후 주자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2번타자 송일섭.....그에게 최동원이 무심코 던진 초구 한가운데 직구가 날아들었고 다음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은 쭉쭉 뻗어가 우측 스탠드에 꽂히는 120m짜리 우월 솔로 홈런이 터지고 말았다...........1 : 0 해태의 리드..

송일섭의 우월 솔로홈런.. 그 한 점의 의미는 컸다. 훗날 그 경기를 지켜봤던 한 야구관계자가 한 말.... '그 한 방은 당시 국내 최고 투수였던 최동원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구겨놓은 단 한 방이었다.' 경기 중에야 에이 한 점 정도는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롯데 팬들의 마음은 경기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초조해졌고 끝내는 경악과 충격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이날의 경기에서 기록된 득점은 양팀 통틀어서 단 한 점.. 송일섭의 홈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는 두 투수의 피말리는 투수전.. 지리한 0의 공방은 9회까지 깨질 줄을 몰랐고 오직 단 한 개의 1자만이 3회초 해태 스코어보드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롯데 팬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 선 선동열의 구위는 식을 줄을 몰랐고 끝내는 아홉 개의 도우넛을 롯데 스코어보드에 새겨넣는 것으로 대선배와의 맞대결을 장식하게 된다.

9회말 2사 1, 3루의 마지막 위기에서 들어선 롯데 9번 정영기를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 세 개로 윽박질러 삼구 삼진을 잡아내며 경기를 매조지하는 순간, 한 점만을 내주며 역투한 최동원과 이를 지켜본 롯데 팬들의 아쉬움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모두의 관심을 모은 이 경기는 1 : 0의 투수전으로 끝났고 이 경기에서 이긴 선동열은 일약 프로야구의 슈퍼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며 최동원 역시 빛나는 역투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경기결과는 그에게 한국 최고투수의 자존심을 구겨버린 흠집으로 자리잡게 된다

최종 기록
W 선동열(완봉승) 투구수 121, 9이닝 5피안타 1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
L 최동원(완투패) 투구수 118, 9이닝 5피안타 2사사구 5탈삼진 1실점
1자책점

그러나 이 경기는 두 투수의 대결 중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2) 86년 8월 19일......선배의 설욕전!!

시즌 후반도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던 8월 중순.. 선동열과 최동원 둘은 다시 한번 사직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당시 해태는 후기리그에서도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에 자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였고 롯데 역시 2위 안에 들어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주친 두 선수....더구나 최동원은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고 선동열 역시 다시 한번 이겨서 선배의 최고투수 자리를 확실히 빼앗고 싶은 맘이었을 것이다.

오후 6시 30분 야간경기로 시작된 이 경기는 그러나 초반 뜻밖의 흐름이 일었고 그 결과가 경기의 승부를 가름하고 말았다. 1회말 롯데 공격....선두타자 정학수가 몸맞는 볼로 출루하고 이어 2번 조성옥의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2루 상황에서 해태 내야진이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면서 미처 몸이 덜 풀린 선동열이 흔들리는 틈을 타 홍문종과 김용철의 연속안타가 터지며 롯데가 선취 2득점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스코어보드에 새겨진 득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동원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6회까지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실점위기에 몰렸지만 수차례 찾아온 위기를 노련하게 고비 때마다 삼진으로 처리하며 관록으로 끝까지 홈플레이트를 사수했고, 선동열은 2회 이후 제 컨디션을 찾으면서 거의 완벽하게 롯데 타선의 예봉을 막아냈지만 끝내 터지지 않는 팀타선을 원망할 뿐이었다. 최동원은 아홉 개의 도우넛을 해태에게 먹이면서 구겨진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고 선동열은 최고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기회를 아쉬움 속에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최종기록
W 최동원(완봉승) 투구수 152, 9이닝 7피안타 4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
L 선동열(완투패) 투구수 106, 8이닝 5피안타 1사사구 9탈삼진 2실점(비자책점)

결국 86년의 둘의 맞대결은 1승 1패의 호각을 형성한 채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3) 중반전.. 하프타임

86년은 두 투수에게 모두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선동열은 24승 6패 방어율 0.99 로 꿈의 방어율 0점대를 달성하고 MVP를 거머쥐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대신 비록 우승은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으로 화룡점정을 못한 아쉬움을 남겼고, 최동원은 19승으로 체면치레는 했지만 마지막 OB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3-1로 앞서던 9회 1사후 김형석에게 동점 투런홈런을 허용하며 3년 연속 20승을 눈앞에서 날려버리고 후배와의 비교에서 반걸음 정도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까웠다.

그리고 시작된 87시즌.. 아마 이건 대부분의 팬들 뇌리에서 지워졌을지 모르겠지만 15회 연장 혈투 이전에 시즌 초 두 투수의 대결은 전초전이 한번 있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역시 사직 구장에서 최동원은 선발로, 선동열은 1회 1사 후 선발 김대현을 구원등판해서 가볍게 일합을 겨룬 일전이었다. 결과는 6-2로 선동열이 승리투수, 최동원은 패전투수로 갈렸지만 이 경기는 오히려 두 투수에게 진정한 맞대결을 앞두고 더욱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 최동원은 패전투수가 되면서 비록 선발 맞대결은 아니었지만 패점을 안은 것이 분했고 선동열은 비록 승리투수는 되었으나 선발로 등판한 경기가 아닌 데다가 그때까지 이어지던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이 5회 2실점으로 인해 49와 2/3이닝에서 깨어지고 만 것이 못내 아쉬운,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된 경기였다.

그러나 이 경기가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지금 두 투수를 회고하는 이 때에도 대다수는 이 경기를 잘 기억 못하는 팬들이 많은 것을..두 투수의 진정한 맞대결은 1승 1무 1패로 기억되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 멋지기에 우리들이 이 경기를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뇌의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진정 그것이 더 아름다운 것을..

그럼 이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멋진 투수전의 백미..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두 투수가 한치 양보없는 일합을 겨뤘던 87년의 그날, 그 경기장으로 가보기로 하자.

(4) 87년의 5월 16일. 아! 그 아름다웠던 선의의 대결

87년 5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 부산 사직 구장.. 경기장은 만원관중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이미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예고된 대로 선동열과 최동원 두 투수의 선발 맞대결이 전격적으로 성사되면서 경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초봄의 날씨는 18도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이미 30도 이상의 무더위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경기 시작 전부터 달아오른 응원 열기는 시작 사이렌이 울리면서 더욱 높아만 갔고 결국 이날 현장에 있었던 관중들은 최고의 명승부를 만끽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1회는 양쪽 다 삼자범퇴.. 먼저 초반 기선을 제압한 것은 롯데였다. 롯데는 2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용철의 볼넷과 김민호, 정구선의 연속안타가 터지고 해태 내야실책을 묶어서 선취 2득점, 최동원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해태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해태는 이어진 3회초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무종이 중전안타로 출루 후 보내기번트로 만든 2사 2루의 찬스에서 서정환의 깨끗한 중전 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어 놓고 계속 동점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2-1의 아슬아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던 경기는 5회초 해태 공격 때 다시 한번 격랑을 일으켰다. 선두 7번 김일권이 중전안타로 포문을 열었고 김응용 감독은 다음타자인 8번 포수 김무종에게 지체없이 보내기번트를 지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김무종이 초구에 댄 보내기번트가 투수 최동원 앞으로 굴러가면서 빠른 발을 자랑하던 1루주자 김일권이 그만 2루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해태로서 더 아쉬운 건 곧바로 9번 차영화의 좌월 2루타가 이어졌으면서도 득점을 못하고 1사 2, 3루에 머무른 점이었다. 롯데는 한 고비를 넘긴 셈이었고 해태는 그저 아쉬움만 곱씹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광경은 바로 다음에 발생했다. 계속 이어진 1사 2, 3루 찬스에서 1번 조재환의 1루수 땅볼 때 3루에 있던 대주자 이순철이 홈으로 뛰어들다 그만 아슬아슬하게 태그아웃 당하면서 비명횡사, 절호의 동점찬스가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해태는 두 번의 주루사가 연달아 일어나자 망연자실했고 최동원으로선 잘 맞은 타구를 잘 건져낸 1루수 김용철과 정확한 홈블로킹으로 이순철의 돌진을 막아낸 포수 김용운이 지옥에서 만난 부처님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최동원은 3회에 적시타를 쳤던 2번 서정환을 고의볼넷으로 거르고 2사 만루 상황에서 3번 이건열을 3루수 땅볼로 잡아내면서 경기 중반 최대의 위기를 넘기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 경기는 9회까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팽팽한 투수전이었다. 최동원과 선동열 두 투수 모두 상대 타선을 거의 꽁꽁 묶다시피 하는 호투를 펼쳤고 어쩌다 나온 진루도 큰 찬스로 이어지지 못한 채 양팀 타자들이 두 투수의 구위에 눌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기는 긴장감 속에 마지막 9회로 접어들었고 1점차의 리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해태 벤치와 선동열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감돌았다.

드디어 운명의 9회초 해태 공격.. 이제 1이닝, 세타자만 아웃시키면 최동원의 완투승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 최동원이 너무 긴장해서일까? 선두타자 한대화에게 3구째에 그만 중전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무사 주자 1루.. 해태는 정석대로 다음타자인 7번 김일권이 보내기번트를 대면서 주자를 2루에 보내놓고 틈을 노렸다. 그리고 이어진 1사 2루에서 포수 장채근 대신에 들어선 대타 김일환....그다지 뛰어난 타자는 아니었던 그에게 해태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일환은 볼카운트 1-2에서 4구째 최동원의 직구를 통타..우익수 키를 넘기는 동점 2루타를 날리며 극적으로 경기를 2-2 타이스코어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만다.

드디어 경기는 9회에 2-2 동점이 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9회말 롯데 공격 때부터 해태 수비진에 엽기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9회에 극적인 동점타를 날렸던 대타 김일환이 나왔던 자리가 바로 포수 자리였고 이미 9회까지 김무종과 장채근, 이건열까지 모두 교체된 상황에서 가용 포수 자원을 다 써버린 해태로서는 더 이상 포수를 볼 수 있는 선수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수많은 대타, 대주자를 기용한 해태로서는 수비진이 헝클어져 있는 상태였고 이에 김응용 감독은 고심 끝에 내야수인 백인호를 포수로 홈플레이트에 앉히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이미 9회까지 마운드를 혼자 이끌어온 선동열로써는 포수 경험이 없는 백인호가 마스크를 쓰면서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패스트볼의 위험성 때문에 극도로 자제해야 할 형편에 몰린 것이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롯데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었다. 롯데 역시 대타와 대주자를 사용하면서 주전 중의 일부가 교체된 상태였고 이는 결국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에 있어서 양팀 모두에게 불안감을 자아내는 상태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역시 선동열과 최동원은 대투수다웠다. 선동열은 9회까지 완투한 체력 상태에서 슬라이더의 사용을 중지하다시피 하면서도 직구 하나만을 가지고 15회까지 롯데 타선을 막아냈고 최동원 역시 불안한 수비진을 뒤에 두고도 15회까지 해태 타선을 0으로 잠재웠다. 그야말로 역투를 넘어선 초인적인 투구였다.

결국 경기는 2-2 동점인 채로 무승부로 끝났고 15회까지 오직 홀로 마운드를 지켰던 두 투수는 4시간 56분간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세 번의 선발 맞대결에서 1승 1무 1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훗날을 기약한다. 그러나 이 날의 맞대결이 둘의 마지막 대결이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두 투수는 다시는 상대와의 직접 대결을 해 보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진정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결국 후인들의 간접비교만을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 날의 처절했던 혈투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전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최종기록
선동열(15회 완투) 투구수 232(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한 경기
1인 최다 투구수)
7피안타 6사사구 10탈삼진 1폭투 1보크 2실점 2
자책점

최동원(15회 완투) 투구수 209(선동열보단 적지만 워밍업시 유난히
공을 많이 던지는 최동원의 특징상 아마 만만치
않은 피로도였을 것임...)
11피안타 7사사구 8탈삼진 2실점 2자책점

▲ 결 론

그러면 이제 과연 뒷사람들이 그 두 투수를 비교하며 누가 더 낫느냐는 논쟁을 벌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동원의 아마 때의 혹사?....아니면 선동열의 기록상의 우월성? 물론 투두수가 처해진 상황은 달랐다.최동원은 당시 팀에 믿을 만한 투수가 자신 밖에 없었고 팀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당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던 해태 타선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게다가 나이도 선동열보다 5살이 많았고..물론 내가 최동원의 팬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상대적으로 보면 그렇다.그러나 그런 것은 이 두 투수의 업적에 가져다 붙이는 한갖 사족에 불과한 것이 아닐런지..

아마도 우리는 이 두 투수와 동시대에 살았고 그들의 맞대결을 나이든 사람은 직접 보거나 젊은 사람은 이렇게 기록을 통해서 반추해 보면서 한 시대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한 투수를 둘씩이나 만날 수 있었다는 데 대해서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게 아닐런지.. 먼 훗날 우리들의 아이가 밖에서 야구하며 놀다가 뛰어들어와서 “옛날에 선동열이란 불세출의 투수가 있었고 또 그에 전혀 뒤지지 않는 최동원이란 또 한 명의 대투수가 있었다는데 아빠는 그 두 사람 경기를 본 적이 있어요?” 하고 물을 때 “그럼, 당연히 봤지....둘이서 5시간에 걸쳐 연장 15회까지 던지면서도 결국 2-2로 무승부가 된 게임도 있었는 걸....그 땐 정말 대단했지..” 하고 추억에 잠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우리들의 두 영웅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쯤 남기는 것이 우리가 할일이 아닐런지..

이제는 두 선수 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선동열은 올시즌 삼성에 코치로 취임해 허약했던 투수진을 투수왕국으로 만들어 놓으면 명조련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최동원은 몇해전 한화 투수코치를 했으나 별로 빛을 보진 못했다.하지만 내년시즌 최동원도 한화 투수코치로 복귀한다. 두 영웅의 지도자로써의 재대결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선동열의 살아 움직이는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볼 끝, 그리고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시원시원한 정면승부.. 그것을 되새기면서 내년시즌 두 영웅이 벌이게될 지도자로써의 대결을 기약하면서 추억의 편린을 접을까 한다.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 야구팬들은 정말 행복했었노란 인사와 함께..


작성자 : ace2079
출처 : http://news.naver.com/nboard/read.php?board_id=sports_dis03&page=104&nid=15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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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들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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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쏠쏠?
간단하게 hello 를 예제에 따라 작성해봣는데 후덜덜..

역시 프레임워크는 킹왕임. 이랄까..

무조건적으로 좋다는건 아니지만 확식히 익혀두면 좋을듯.

공부공부공부공부 닥공부만 해야하나?

자주는 못쓰겠지만 이제 조금씩 해보자. ~
Posted by 만들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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